더백혼이 이야기하는 스미노 요루의 매력
기사 번역

더백혼이 이야기하는 스미노 요루의 매력

컬래버레이션 프로젝트 시동에 따라, 서로의 작품이나 좋아하는 것에 대해 깊게 파고든 좌담회가 실현. 더백혼(THE BACK HORN)의 멤버들이 스미노 요루(住野よる) 작품에 이끌린 부분은…?

정경이 떠오르는 묘사

스가나미 인터뷰에서 “저희도 팬입니다”라는 말씀을 드렸었는데요, 사실 아까 전까지 마사시랑 카페에서 멋대로 먼저 좌담회를 열고 (웃음) 스미노 작품의 대단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스미노 씨의 소설은 머릿속에 그림처럼 떠오르는 세밀한 묘사가 정말 많이 들어있는 게 대단하다는 이야기가 나왔어요. 성인인 스미노 씨가 어째서 초등학생 여자아이의 시선으로 그렇게까지 쓸 수 있는 걸까, 하고요.

야마다 《또다시 같은 꿈을 꾸었어(また、同じ夢を見ていた)》의 주인공인 나노카 말이지.

스가나미 맞아. 그 나노카가 낙담하고 있을 때 아바즈레(アバズレ, 헤픈 여자) 씨라는 언니가 말을 걸어오고, 무릎을 끌어안고 앉은 채 고개를 흔드는 장면이 있는데, 거기서 ‘이마가 스커트와 마주쳐 서걱거리는 소리가 난다’라는 묘사가 있어요. 저라면 그런 것까지는 못 쓸 것 같거든요. 하지만 그 묘사가 있기 때문에 얼굴을 들지 않은 채 고개를 흔들고 있는 그녀의 마음이 굉장히 잘 전해져요.

야마다 작은 몸인데도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흔들었구나, 그만큼 슬픈 마음이었겠구나 하는 정경이 떠오르지.

스가나미 응. 그렇게 이마와 무릎이 가까우면 시야는 캄캄하겠구나 하는 것도 그것만으로 알 수 있어요. 굉장히 디테일을 상상하며 쓰신 거 아닐까 싶어서요. 이런 부분은 나노카의 시점이 되어서 쓰시는 건가요?

스미노 감사합니다. 기본적으로는 머릿속에 계속 영상이 흐르고 있고, 그것을 문장으로 옮겨가는 감각입니다. 아마 이 방은 아주 고요할 테니 이런 작은 소리도 들리겠지 하고 생각하며 쓰기도 합니다.

야마다 비교적 조감하며 쓰신다는 거군요.

스미노 네, 그렇습니다.

스가나미 그리고 묘사뿐만 아니라 감정 같은 것도 ‘이 느낌, 알 것 같아’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순간적인 감각이라 스스로는 지금까지 언어로 치환하지 못했던 것을 이해해 주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듭니다.

마츠다 동감이야. 표현이 매우 적절하다고 할까요, 치밀하다고 할까요… 정곡을 찔린 느낌이 들어서 대단해요.

스미노 자신의 마음을 언어화해 준다는 점은 제가 처음 접했을 때부터 더백혼 분들에 대해 계속 느껴왔던 점과 같아서,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영광입니다.

‘그 녀석 지금 뭐 하고 있을까’

오카미네 스미노 씨가 쓰시는 이야기는 다른 소설과 비교했을 때 다 읽고 난 뒤의 여운이 긴 느낌이 들어요. 책을 덮고 현실로 돌아와서도 한동안 책 속의 세계를 생각하게 된다고 할까요. ‘그 녀석 지금 뭐 하고 있을까’ 하고요.

스미노 기쁩니다. 저에게 등장인물들은 ‘만난 적은 없지만 굉장히 친한 친구’라는 감각이 있어서 독자분들도 그렇게 생각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하거든요.

오카미네 물론 그들을 만난 적은 없지만 어딘가에 살고 있고 그들의 이야기도 계속 이어지고 있을 거라는 감각이 있습니다.

마츠다 저는 최신간인 《어리고 아리고 여려서(青くて痛くて脆い)》를 정말 좋아했습니다. 제목도 멋지고, 청춘 시절에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이 가득 담겨 있을 것 같아 읽기 전부터 끌렸는데 읽고 나서 한층 더 충격을 받았죠. 주인공인 카에데라는 소년과 아키요시라는 소녀의 관계성에 대한 이야기인데, 해석의 여지가 남겨진 부분이 있어서 나름대로 여러 가지로 ‘이때 그녀는 이렇게 생각하지 않았을까’라거나 ‘여긴 쓰여 있지 않지만 이 뒤에 분명 이렇게 됐을 거야’ 같은 생각을 품으며 읽었습니다. 소설을 읽으며 그런 마음을 품은 건 처음이라, 그걸 꼭 스미노 씨에게 직접 전하고 싶어져서 30분 정도 와다다 일방적으로 이야기해 버린 적이 있었죠. 그때는 죄송했습니다.

스가나미 마음의 소리가 다 새어 나왔었지. (웃음) 그걸 스미노 씨가 계속 싱글벙글하며 들어주시고.

스미노 아뇨, 그렇게까지 깊이 읽어주신 게 정말 감사해서 감동했습니다. 《어리고 아리고 여려서》는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君の膵臓をたべたい)》의 스미노 요루’라고 계속 불리는 게 싫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쓰기 시작한 작품입니다. 제 스스로 그런 상태가 싫다고 생각한 면도 있고,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라는 작품 자체가 상업적으로 너무 커져서 의도치 않은 방식으로 다뤄지는 측면도 보였기 때문에, 사쿠라 일행이 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래서 《어리고 아리고 여려서》는 《췌장》을 장사 지내겠다는 생각으로 썼습니다. 양쪽 모두를 좋아해 주시는 독자분들로부터는 “굉장히 이어져 있는 느낌이 들었다”라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마츠다 아까 나왔던 《또다시 같은 꿈을 꾸었어》의 세계관도 무척 좋아했습니다. 인간은 항상 모든 선택을 하며 살아간다는 사고방식을 그 책에서 느꼈거든요. 그것이 그 작품을 쓰면서 생겨난 것인지, 아니면 원래 스미노 씨가 가지고 계셨던 생각인지 한 번 여쭤보고 싶었는데, 어떠신가요?

스미노 원래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에서도 ‘자신의 선택에 의해 모든 것이 결정된다’ 같은 내용을 썼었고, 그런 ‘스스로 선택할 수 있을 것이다’라는 사고방식은 있었습니다. 다만, 《또다시 같은 꿈을 꾸었어》를 쓰기 시작한 건 몇 번이나 신인상에 응모했다가 떨어지는 것을 반복하던 시절이라, 나는 이제 프로 소설가가 될 수 있는 사람이 아니구나 싶어 자포자기하고 있었을 때였어요. 표현이 좀 그렇지만 지금보다 훨씬 쓰레기 같은 인간이었고, 이래서는 어린 시절 꿈꾸던 나 자신을 떳떳하게 볼 수 없겠다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그렇기에 지금부터라도 인생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제 소망을 담은 이야기를 쓴 것 같습니다. 더백혼의 〈블랙홀 버스데이(ブラックホールバースデイ)〉를 들으며 제가 좋아하는 것들을 잔뜩 채워 넣었습니다.

스가나미 《밤의 괴물(よるのばけもの)》에서도 주인공이 큰 선택을 하죠. 선택한 결과가 어떤 결말로 이어질지 알 수 없더라도, 인생을 스스로의 손으로 선택해 나가는 것 그 자체의 숭고함을 느꼈습니다.

야마다 ‘선택할 길은 있다’라는 가능성을 가르쳐 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스가나미 맞아요, 가르쳐 주는 느낌. 《밤의 괴물》에서는 특히, 자신이 내면에서 느끼는 ‘선택하길 잘했다’라는 생각과는 반대로, 남이 보기에는 ‘저 녀석, 지옥 문을 연 것뿐이잖아’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양면성을 느꼈습니다. 그게 제가, 스가나미 에이준이 가진 가치관과 굉장히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타인으로부터 “굳이 황야 쪽으로 나아가지 않아도 될 텐데…”라는 말을 듣더라도, 스스로는 ‘굉장히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선택이 있잖아요.

스미노 네, 맞습니다. 《밤의 괴물》은 오직 자기 자신에게만 해당되는 ‘옳음’ 같은 것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스가나미 그런 인생을 걷고 싶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기에 굉장히 공감합니다.

스미노 감사합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정말 쓰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이야기는 러브코미디?

스가나미 그 뒤에 《나「」만「」의「」비「」밀「(か「」く「」し「」ご「」と「)》이라는 러브코미디 요소가 가득한 작품을 주신 점도 감사합니다. 더백혼은 꽤 시비어(severe)한 가사를 쓰는 경우가 많잖아요. 하지만 저는 뿌리 깊은 곳에서 러브코미디 같은 걸 정말 좋아하고, 해피 엔딩을 동경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만「」의「」비「」밀「》을 읽었을 때 굉장히 안심했다고 할까, 자양분을 얻은 느낌이었습니다.

스미노 예전에 에이준 씨가 “모든 이야기는 러브코미디라고 생각한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 그 이후로 그 말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깊은 말이라고 생각해서요.

스가나미 작년에 헤이스미스(HEY-SMITH)와 도야마에서 대반(対バン) 라이브를 했을 때 대기실에서 그런 화제가 나왔거든요. 우연히 드래곤볼(ドラゴンボール)인가 뭔가의 이야기가 나와서 제가 “드래곤볼은 러브코미디지”라고 했더니 다들 엄청 바보 취급을 하더라고요. 그건 배틀 만화 아니냐고요. 하지만 저는 전투 장면조차 러브코미디를 위한 복선이라고 해석했으니까요.

오카미네 아니, 러브코미디 장면도 필요하지만 본줄기는 역시 액션 아니야?

스가나미 저 같은 경우 액션 부분은 꾹 참고 본다고 할까… 거기서 열심히 보면 볼수록 마지막의 왁자지껄한 장면이 살아나거든요. 형사 드라마 같은 것도 그래요. 사람이 죽는 사건 같은 긴박한 장면이 아무리 길어도, 마지막에 3분 정도만 나오는 러브코미디, 그걸 위해 모든 것이 존재했다는 느낌이 듭니다. 뭐라고 해야 할까요, 설령 가혹한 현실이 닥치더라도 전부 그 뒤에 올 러브코미디를 위한 복선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든 버틸 수 있다고 할까. …이거 전달이 되나요?

스미노 네, 잘 알 것 같습니다. 저도 시리즈물 드라마나 만화 같은 걸 보면 어떤 대사건이 일어난 직후의 이야기를 가장 좋아하거든요. 예를 들어, 친구였던 남녀가 뜨거운 전개를 맞이한 다음 날이라든가. (웃음) 둘 다 평소로 돌아왔을 때 어떤 얼굴로 만날지 궁금해서 그게 너무 기대되거든요.

스가나미 알 것 같아요. 그래서일까요, 스미노 씨의 작품 중에서도 시리어스한 장면 뒤에 꽤 훈훈한 에필로그가 나오는 것들이 있죠. 어떤 작품이라고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참겠지만, 그런 걸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하며 읽고 있습니다. (웃음)

스미노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저기, 그냥 팬으로서 드리는 말씀이라 송구스럽습니다만, 그걸 깨달았을 때 대화 상대가 헤이스미였다는 점도 뜨겁네요. (웃음)

스가나미 그 친구들은 착해서 제 열변을 한동안 응응 하며 들어줬거든요. 처음에는 “모르겠다”라고 하더니 나중에는 “그럴 수도 있겠네요”라고 말해줘서 포옹하고 헤어졌습니다.

오카미네 그거 최종적으로도 딱히 이해한 건 아닌 것 같은데. (웃음)

스가나미 확실히. 이야기하는 도중에 저라는 인간이 러브코미디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스스로 깨달았을 뿐일지도 모르겠네요. (웃음)

이런 말을 하면 의외라고 생각하시겠지만, 전 스미노 씨의 작품이 다케시 씨(키타노 타케시, 北野武)의 영화와 굉장히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해요. 작풍은 완전히 다르지만… 다케시 씨의 작품은 매번 새로운 살해 방식을 만들어내고 있잖아요. 새로운 가슴 철렁한 죽음이라든가, 새로운 아파 보이는 묘사를 발명하지 않으면 그분은 직성이 풀리지 않는 게 아닐까 싶거든요. 예전에 TV에서 봤는데, 이렇게 죽이면 좋지 않을까 하는 걸 사시사철 생각하다가 떠오르면 메모한다고 하더라고요. 거기서 집념을 느낍니다.

반면 스미노 씨는 매번 새로운 ‘심쿵 묘사’를 계속 낳고 있어요. ‘심쿵 묘사’라는 말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웃음), 어쨌든 항상 그런 것을 계속 만들어내고 있죠. 이런 심쿵한 묘사가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매번 놀라요. 이번 소설을 조금 앞부분까지 미리 읽었습니다만, 거기서 나오는 묘사는 그야말로 그 새로움이 마침내 극에 달했다는 느낌이었습니다.

마츠다 확실히, 그건 대단했지.

스미노 감사합니다. 그렇게 생각해주셨다면 기쁩니다. 독자 여러분도 재미있게 읽으실 수 있도록 앞으로도 열심히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