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력이 넘치고 상식의 틀을 벗어나는 듯한 애니메이션을 다루어 온 유아사 마사아키(湯浅政明). 대망의 신작 영화 《견왕: 이누오(犬王)》는 무로마치 시대의 노가쿠사(能楽師)와 비파 법사 두 사람을 주인공으로 하는 뮤지컬 애니메이션이다. 인터뷰에서 밝힌 유아사의 상상력—사람과 역사, 세계를 이해하려는 정신 또한 영화와 마찬가지로 자극으로 가득했다.
스크린 가득 펼쳐지는 상상력의 분류(奔流)가 관객을 흔들고 소용돌이 속으로 휘말리게 한다. 영화 《새벽을 알리는 루의 노래(夜明け告げるルーのうた)》(2017년), TV 애니메이션 《영상연에는 손대지 마!(映像研には手を出すな!)》(2020년) 등, 유아사 마사아키가 다룬 역동적인 애니메이션은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이형(異形)의 노가쿠사 이누오와 눈먼 비파 법사 토모나를 주인공으로 하는 신작 《견왕: 이누오》는 후루카와 히데오(古川日出男)의 《헤이케모노가타리(平家物語)》 스핀오프 소설을 원작으로, 각본 노기 아키코(野木亜紀子), 캐릭터 원안 만화가 마츠모토 타이요(松本大洋), 음악 오토모 요시히데(大友良英), 주연 아부짱(アヴちゃん; 여왕벌, 女王蜂)·모리야마 미라이(森山未來)와 같은 재능들이 결집했다. 민중을 열광시켜 가는 주인공들의 퍼포먼스처럼, 유아사가 인터뷰에서 들려준 말들은 읽는 이의 다음 행동을 촉구하는 듯한 열기를 띠고 있었다.
《견왕: 이누오》를 보고 이전부터 유아사 감독님이 가지고 계셨던 음악과 댄스에 대한 집념이 더욱 폭발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스스로는 어떻게 느끼시나요?
유아사 우선 음악입니다만, 원래 애니메이션 안에서 음악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게다가 이번 주인공 두 사람은 노가쿠사와 비파 법사죠. 악기인 비파는 물론이고 노가쿠(能楽) 역시 뮤지컬로 분류할 수 있는 세계 최고(最古)의 연극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음악적 요소가 많이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특히 후반부는 노래 속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부분이 있어서 더욱 본격적인 음악 영화라는 느낌이죠.
무로마치 시대의 도읍에서 만난 이형의 노가쿠사 이누오와 눈먼 비파 법사 토모나. 세상의 끝에서 살아가던 두 소년이 손을 잡고, 이윽고 청년이 되어 도읍 전체를 뒤흔들 정도의 퍼포먼스를 펼쳐갑니다. 록도 힙합도 도입된 노도와 같은 뮤지컬이 되었더군요.
젊은 두 사람의 생애를 무로마치 시대 속에 그리고 있는데, 당시로서 매우 새롭고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것,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과거에도 완전히 현대와 다르지 않은 것조차 있었다는 점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후세의 역사에서는 채택되지 않았더라도 그런 것이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황당무계해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와 비슷한 일이 행해졌을 것이라는 설정입니다. 당시 지켜보던 관객들에게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그들의 퍼포먼스가 몇 배나 더 부풀려져 보이지 않았을까. 그런 세계를 그리기로 한 것이죠.
‘후세의 역사에서는 채택되지 않았더라도 그런 것이 분명 존재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으로 유아사는 이누오와 토모나의 퍼포먼스를 그려 나갔다고 한다. Photograph: Shintaro Yoshimatsu
이누오는 실존했던 인기 노가쿠사이지만, 칸아미·제아미와는 대조적으로 기록이 거의 남아있지 않은 인물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남겨진 것만으로 과거를 추측한다는 역사 인식은 아무래도 너무 좁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공룡의 재현 일러스트에 갑자기 털이 나거나 무늬가 생기는 경우가 있잖아요. 그때까지의 상상의 폭이 너무 좁았기 때문에 갑자기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꾸로 말하면, 지금 생각되는 아이디어 중 상당수는 아마 과거의 누군가가 생각한 적이 있을 겁니다. 다만 형태가 되지 않았거나 그 후에 남지 않았을 뿐이죠. 현재에서 과거를 향해 끝이 가늘어지는 것이 아니라, 역사라는 것은 광대하고 수많은 사람이 있으며 다양한 아이디어로 넘쳐나는 풍요로운 것입니다. 그 위에 지금이 있다는 느낌을 주고 싶었습니다.
역사를 포착하는 방식이 특징적이기 때문에 이번 작품의 터치가 나온 것이군요.
네. 댄스에 관해서도 고금동서의 신체 표현을 도입했습니다. 특히 새로운 것은 셔플 댄스(고속으로 스텝을 밟는 춤)와 같이 발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그 밖에도 발레 같은 것, 체조 같은 것, 혹은 칼 루이스의 멀리뛰기 같은 점프 등 다양한 움직임이 있습니다. 남겨진 역사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당시에 있었을지도 모르는, 말하자면 ‘위사(僞史)감’이 있는 일을 했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싶었습니다.
전설이 된 엘비스 프레슬리의 그 선정적인 허리 움직임도 연상시키는 듯한 에너제틱한 영상이라고 느꼈습니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부분적으로 프레슬리를 의식한 부분도 있어요. 토모나가 결성한 밴드의 연주 장면에서 무릎을 흔들며 앞으로 나아가 관객에게 다가가는 부분은 바로 그렇습니다. 프레슬리의 움직임이 멋지다고 생각했었거든요.
애초에 ‘애니메이션으로 사람을 춤추게 하고 싶다’라는 욕망 같은 것이 감독님 안에 있는 것일까요?
기본적으로 소리에 맞춰 몸을 움직이는 것을 좋아합니다. 제대로 춤을 추지는 못하고 댄스를 연습한 적도 없지만, 애니메이션을 만들 때도 애프터 레코딩이나 더빙 때도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답답해서 서서 영상에 맞춰 리듬을 타는 경우가 많습니다. 콘서트도 앉아 있는 것이 답답해서 혼자만 서면 창피하니까 주변 사람들도 다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욕망은 있습니다. 그림이라면 춤추게 할 수 있고 저보다 춤을 더 잘 그리는 사람이 있으니까요.
어려운 부분인데, 실사에서 안무가분께 안무를 맡기면 제가 좋아하는 부분과 싫어하는 부분이 의외로 드러날 것 같아요. (웃음) 그림이라면 이쪽에서 컨트롤할 수 있다는 점도 있죠.
댄스나 음악에 휩쓸려 달아오르는, 이른바 ‘즐기는’ 쪽의 군중도 매우 정성스럽게 그려진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실제 시대 배경상 거리 사람들에게 이누오나 토모나 같은 예인은 등급상 자신보다 아래인 사람들로 간주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엄청난 일을 해내는 그들을 신기한 눈으로 바라봤던 것이죠. 자신들과는 다른, 흉내 낼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기에 실제로 부채 너머로 본다는 장면이 자주 그려져 왔고, “요정을 보는 듯한 감각이었다”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합니다.
그런 이누오와 토모나가 사람들을 선동하는 것입니다. 휘말려 함께 열광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이누오와 토모나가 출세함으로써 자신들 또한 상승해가는, 그런 희망 같은 것을 품지 않았을까. 자신들의 동료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하는 시선으로 그렸습니다.
어린 토모나가 시력을 잃은 뒤 청각이나 촉각을 통해 세상의 해상도를 높여가는 장면이 있죠. 특별히 팀을 만드셨다고 들었는데, 마치 애니메이션의 원점과 같은 장면으로 색과 선, 소리와 리듬으로 구성되는 거장 노먼 맥라렌(Norman McLaren)의 영상 세계도 떠올랐습니다.
청각에서 얻는 ‘머리에 비치는’ 영상이란 아마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이미지를 화면에 담고 싶었습니다. 카메라로 찍을 수 있는 실사 영상이 아니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지 않으면 보여줄 수 없는 영상을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항상 ‘그 사람의 주관이 되어 보고 싶다’라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세상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에 흥미가 있다고 할까요. 《견왕: 이누오》는 한 사람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주관을 넣은 작품인데, 근본적으로는 다양한 사람의 기분을 맛보고 싶고,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감독님 자신의 주관에 관해서는 어떠신가요? 작품 전반에 걸친 강렬한 비전과 이미지의 분류를 제작 팀원들과 어떻게 공유하셨나요? 유념하셨던 점이 있습니까?
끊임없이 말로 하거나 그림이 완성되어 가는 것을 보여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함께한 분들과 최근 이렇게 취재 기회에 대담 등을 하다 보니 생각보다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었구나… 하는 걸 깨닫습니다. (웃음) 점점 완성되어 가면서 이해해 주시거나 반대로 이쪽에서 맞추어 가는 부분도 있긴 했지만요.
하지만 대개 비전이라는 것은 좀처럼 공유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죠. (웃음) 완성된 것이 그 사람에게 어떠했는지, 좋았다고 생각해주느냐 하는 점을 고려하려 합니다.
비전이라는 것은 좀처럼 공유할 수 없는 경우가 더 많다며 웃으며 회고하는 유아사. 완성된 결과물이 ‘좋았다’라고 느껴지는 것을 소중히 여겼다고 말한다. Photograph: Shintaro Yoshimatsu
감독님 스스로 작업하면서 즐거웠던 장면이 있나요?
제가 즐겁다기보다 역시 좋은 원화가 올라오면 즐겁습니다. 이누오에게 발이 생겨 뛰어다니는 부분도 좋고, 종반에 발레를 추는 부분도 아주 좋은 원화였고 그 외의 부서에도 많이 있습니다. 다양한 공정 속에서 그런 것들을 보면 기뻐집니다.
그럴 때는 당초 이미지와 다소 다르더라도 채용하고 나머지를 그에 맞춰 조정해 나가는 방식입니다. 타이트한 스케줄 속에서 좋은 결과물이 올라온다는 것은 매우 든든한 일이죠.
그렇군요. 본작의 설정은 무로마치 시대인데, 현대가 아닌 과거, 시대극을 다루는 묘미는 어디에 있었나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면 즐겁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것과 연결되어 ‘아, 그런 거였구나!’라는 발견이 있는 순간이라든가요.
예를 들어 횃불(松明)도 저는 굵은 나무 막대에 기름을 묻혀 태우는 것이라 생각했는데, 송진(脂)이 많은 가는 소나무 가지를 모아 묶은 것에 불을 붙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 ‘과연 그렇구나!’ 하게 되거든요.
2019년 〈와이어드 아우디 이노베이션 어워드(WIRED Audi INNOVATION AWARD)〉 수상 인터뷰 당시에는 길가의 꽃도 신경 쓰인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타인의 주관이나 세계를 이해하고 싶다는 이번 이야기와 포함해 유아사 감독님의 일상 감각과 작품 제작은 어떻게 결합되어 있나요?
그렇네요… ‘이해’라는 것을 테마로 내걸고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면서도, 정말로 이해한다는 것은 꽤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사람이란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상태니까요.
어딘가에 마음이 척척 맞아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고 느끼지만, 그렇지 않고 분명히 자신과 다른 사람이라도 다르다고 쉽게 부정하고 싶지 않달까요. 제가 이해받고 싶어서 그런 것이겠지만, 그렇기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도 이해해 보고 싶습니다. 아마 그런 게임은 영원히 계속되겠죠. (웃음) 잘 모르기 때문에 알고 싶은 겁니다. 사람 이외의 것도 무엇이든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이누오와 토모나 두 사람이 만나 나란히 달리며 자아내는 이야기는 상징적이네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역사 인식을 포함해 기본적으로 계속 작품의 테마로서 ‘그렇게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라는 느낌이 있네요, 하하하하! 알기 쉽게 즐길 수 있는 희망적인 부분도 있으면서 그렇지 않은 부분도 있는 거죠. (웃음)
사람이나 세계, 역사의 이해는 깊이가 깊다는 말씀이군요.
네. 그렇기 때문에 악해 보이는 조연들도 그렇게 단순히 악당인 것만은 아니고, 그저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역할인 것만도 아닌 셈이죠. (웃음) 우선은 젊은이들이 출세해가는 엔터테인먼트를 즐겨주시면 기쁘겠고, 그 속에서 세부적인 것들을 살펴 가다 보면 또 조금씩 세계가 넓어질 것입니다.
Photograph: Shintaro Yoshimats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