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스레란네요, 모든 작품을 되돌아보다 vol.1】 — 명곡 연발, 초기 충동과 야심 번뜩이는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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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스레란네요, 모든 작품을 되돌아보다 vol.1】 — 명곡 연발, 초기 충동과 야심 번뜩이는 시기

와스레란네요(忘れらんねえよ)가 결성 16주년째에 돌입한 올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C부터 시작하는 ABC(CからはじまるABC)〉, 〈이 고동을 뭐라 부를까(この高鳴りをなんと呼ぶ)〉, 〈나여 전해져라(俺よ届け)〉가 각각 유튜브 100만 회 재생을 돌파한 것을 기념하여 ‘100’이라는 숫자에 집착한 기획을 잇달아 진행하고, 그 모든 것을 이겨내 온 시바타 타카히로(柴田隆浩, Vo.Gt)가 다음에 도전하는 것은 기존의 97곡에 신곡 3곡을 더한 100곡을 3일 동안 다 부르는 ‘전곡 라이브’이다. 라이브 개최를 앞두고 와스레란네요와 운명공동체인 오토토이(OTOTOY)에서는 시바타를 대상으로 롱 인터뷰를 감행. 데뷔 당초부터 현재까지의 작품과 그에 얽힌 에피소드를 되돌아보며, 라이브 직전까지 5주 연속으로 게재한다.

제1회는 【명곡 연발, 초기 충동과 야심 번뜩이는 시기】 ~첫 번째 싱글 《C부터 시작하는 ABC》부터 첫 번째 앨범 《잊을 수가 없어((忘れらんねえよ))》까지~. 갑자기 애니메이션 《역경무뢰 카이지 파계록편(逆境無頼カイジ 破戒録篇)》과의 타이업이 결정되어 초기 충동과 야심을 전개하며 펑크 록을 울리던 그 시절. 시바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부디 이 타이밍에 모든 음원을 체크하고, 본 기사를 ‘전곡 라이브’를 향한 와스레란네요 공략 가이드북으로서 숙독해 주시길 바란다.


최신 아티스트 사진.

“나, 메이저 데뷔 결정됐어”라며 허세를 부리고 또 부려서 (웃음)

오늘은 〈‘전곡 라이브’ ~와스레란네요의 곡 전부 다 하기~〉를 향해, 데뷔 당시부터 현재까지의 작품과 그에 얽힌 에피소드를 CD 발매 시계열 순으로 물어보고자 합니다.

시바타 알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우선은 데뷔작인 첫 번째 싱글 《C부터 시작하는 ABC》(2011년 8월 24일)부터입니다.

C부터 시작하는 ABC - 와스레란네요 【뮤직 비디오】

벌써 13년 가까이 전이니까 28살 때인가… 이거, 당시의 아티스트 사진이 매니저인 사와토(澤藤) 씨와 술을 마시고 있을 때 찍은 사진이에요. 저는 이 무렵 영업직을 하고 있어서 양복을 입고 있었고, 완전히 아마추어였죠. 〈C부터 시작하는 ABC〉는 리허설 스튜디오에서 당시 멤버 3명이서만 있을 때 만든 곡으로, 그때는 이른바 어른들(음악 업계 관계자)은 아무도 붙어 있지 않아서 〈C부터 시작하는 ABC〉를 녹음한 테이프를 60개 정도 여러 회사에 엄청나게 보냈고 거기서부터 시작됐죠. 그랬더니 확실히 7개 회사 정도에서 전화가 왔어요. 그중에 음악 레이블 LD&K의 스가와라 (타카후미, 菅原隆文) 씨도 있었어요. 전화를 받았더니 갑자기 “좋네! 몇 곡 있어?”라고 하셔서. (웃음) 그때는 저도 겁을 먹어서 뭐가 뭔지 모르니까 “아, 아니요, 아직 곡이 없어요”라고 대답했더니, “없어? 그럼 다음에 또 전화할게!”라며 바로 끊어버리셨죠. (웃음)

그 후에 또 전화가 왔나요?

없었습니다. (웃음) 그런 와중에 사와토 씨에게도 연락이 와서 “라이브를 보러 갈게요”라고. 그 시절의 저희는 어차피 아마추어라 각오도 아무것도 없는 보잘것없는 라이브를 하고 있었지만 자기 평가는 쓸데없이 높은 상태였죠. 시부야 야네우라(渋谷屋根裏)에 보러 와 주셨는데, 관객은 5명 정도였고. 하지만 저는 라이브에 상당히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끝난 후 “어때요?”라며 기세등등한 얼굴로 물었더니, “좀 최악이네” 같은 말을 들어서. “에엣?! 무슨 말씀이세요?”라고 했더니, 라이브도 전혀 엉망이고 당시 홈페이지도 없었으니까 우선 홈페이지부터 만들자라든지 여러 가지 조언을 해 주셨어요. 그러면서 “일단 라이브 동원 100명까지 힘내 봅시다”라고. 하지만 “아니, 그렇게 모객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같은 느낌이었죠. (웃음)

술집에서 사와토 씨(매니저)가 촬영한 아티스트 사진.

각 레코드 회사에 데모를 보냈을 때의 사진.

관객이 5명이었으니까요.

“무리무리! 그렇게 모객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라고 했죠. 하지만 사와토 씨는 “100명 집객하면 다음은 시부야 콰트로(渋谷QUATTRO)를 채웁시다”라고 말하곤 했죠. 거기서부터 술을 엄청 마시게 됐는데, 그게 당시 사와토 씨가 A&R을 맡고 있던 레코드 회사 뱁(VAP) 사내에서 조금 문제가 됐어요. “알 수도 없는 밴드에 돈을 너무 많이 쓴다”고. (웃음) 하지만 저희는 처음으로 메이저 레코드 회사 사람과 엮일 수 있다는 게 너무나도 기뻐서. “꿈이 이루어졌다!”라고 생각했거든요. 사와토 씨가 있던 뱁은 니혼테레비(日本テレビ) 계열인데, 자주 술 마시러 다니는 중에 니혼테레비에서 애니메이션 《역경무뢰 카이지 파계록편》이 방송된다는 이야기가 나와서. 그 엔딩 테마곡이 다른 아티스트의 곡으로 가결정되어 있었는데, 최종 심사 같은 곳에서 저희가 리허설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쓰레기 같은 데모를 일단 내보겠다고 사와토 씨가 제출했더니 통과되어 버렸어요. 그 무렵에는 아직 라이브 동원이 5명이었지만 TV 애니메이션에 곡이 사용되게 되면 뱁에서 릴리스해야 하니까, 즉 ‘메이저 데뷔’가 되는 거죠. 관객 5명인데. (웃음) 그런, 정말로 알맹이 없는 메이저 데뷔를 했습니다. 당시 주변에 엄청 떠벌리고 다녔지만요. “나, 메이저 데뷔 결정됐어”라며 허세를 부리고 또 부려서. (웃음)

전대미문의 메이저 데뷔네요. (웃음)

하지만 지상파 애니메이션이고 《카이지》라는 빅 타이틀이니까, “폭음으로 챗몬치를 들었다”거나 “자위로 잃어버리는 에너지” 같은 가사는 당연히 고쳐야겠지 하고 이야기하고 있었거든요. 그랬더니 니혼테레비에서 “안 고쳐도 됩니다”라고 해서 ‘진짜?!’라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카이지》 속에서 유일하게 등장하는 히로인 사카자키 미코코를 피처링한 엔딩 영상이 되었는데, 그것도 있어서 이틀 만에 60만 회 재생 정도 기록하며 당시에 엄청나게 화제가 됐죠. 그래서 밴드의 인기가 올라갔냐고 하면 그렇지는 않았지만, 정말로 거기서부터 시작된 느낌입니다.

애니메이션 《역경무뢰 카이지 파계록편》의 엔딩 테마로 기용된 〈C부터 시작하는 ABC〉의 포스터.

밴드 시작하기 전까지 28년분의 초기 충동이 있었던 거죠

“C부터 시작하는 ABC”가 세상에 나온 뒤 라이브 동원은 어땠나요?

늘어났어요. 30~40명 정도 들어오게 됐습니다. 그래도 그 정도였지만, 거기서부터 저희의 의식도 역시 조금씩 바뀌어서 두 번째 싱글 《우리들 체인지 더 월드(僕らチェンジザワールド)》(2011년 12월 21일)를 낼 무렵에는 동원이 100명 조금 안 되는 수준까지 됐었죠. 다만 원맨 라이브를 할 수 있을 정도로 곡 수는 없었기에, 최대 2맨 라이브 같은 느낌으로 시부야 야네우라와 시모키타자와 케이브비(下北沢CAVE-BE)에서 자주 공연했습니다. 그리고 이때쯤 시모키타자와 셸터(下北沢SHELTER) 오디션에서 떨어졌네요. 당시에는 낮 라이브로 오디션 같은 걸 보고 라이브 하우스 측에서 OK를 내면 밤 라이브에 나갈 수 있는 등용문 같은 느낌이 있었거든요. 결국 지금까지도 떨어진 채 그대로지만요. (웃음)

당시의 전단지.

〈C부터 시작하는 ABC〉에 들어있는 곡들은 라이브 동원 5명 시절부터 하던 곡들인가요?

맞습니다. 〈북극성(北極星)〉은 당시 시부야 굴다리 밑에 ‘야마가타(やまがた)’라는 술집이 있었는데, 거기서 떠올랐어요. 원래 2비트로 쿵짝쿵짝 하는 하이스타 같은 이미지로 쓴 곡이었는데, 우메츠 (타쿠야(梅津拓也), 전 멤버 Ba)가 “컨트리풍으로 하고 싶어”라며 “이거 들어봐” 하고 아티스트 이름은 잊었지만 컨트리 참고 곡을 들려줬어요. 마지못해 그 리듬으로 해 봤더니 “우와, 엄청 좋네!” 같은. 역시 우메츠는 대단하구나 싶었죠. 그는 프로듀서 기질이 있어요. 음악 지식도 대단하고 센스가 좋거든요. 조합의 센스라고 할까, 아이디어 뱅크니까요. 그걸 ‘야마가타’에서 만들었던 게 기억나네요.

중간에 레게로 변하는 어레인지도 특징적이죠.

그것도 아마 우메츠의 아이디어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 어레인지의 재미, 리듬의 재미 같은 건 전부 우메츠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에게는 그런 서랍이 별로 없거든요. 초기에는 그런 우메츠의 음악 센스에 많이 의지했고 우메츠는 그걸 즐겼었죠. 나중에는 그게 점점 없어져서 제가 “이렇게 하고 싶다, 저렇게 하고 싶다”가 되면서 힘들어졌다고 나중에 본인이 말하더라고요.

〈북극성〉의 후렴에서 부르는, “그녀의 그곳에 찾아온 봄은 내 마음을 북극성처럼 만들어”라는 가사는 명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건 어떤 의미로 쓰신 건가요?

그거 좋은 펀치라인이죠?! 의미는 말 그대로 ‘좋아하는 여자애에게 남자친구가 생겨 버렸다’는 것을 아름답게… 아름답지는 않지만 (웃음), 그렇게 쓴 거예요. “그녀의 그곳에 찾아온 봄은”이라니 대단하죠. 좀 더 평가받았으면 좋겠어요.

아니, 이건 이미 문학으로서 훌륭해요.

그쵸?!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의 《은하철도의 밤(銀河鉄道の夜)》 같은. (웃음) 반짝반짝 빛나는 저질 가사라고 할까, 그걸 제대로 북극성이라는 단어로 승화시키는 것. 이 곡을 썼을 때 왠지 북극성이라는 단어가 나왔는데, 북극성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그 후에 알게 됐어요. 그것도 뭔가 노래의 의미로서 옳다는 생각이 듭니다.

두 번째 싱글의 타이틀곡 〈우리들 체인지 더 월드〉는 초기 라이브에서 오프닝 곡의 고정이었죠.

초기부터 라이브 단골곡이었는데 지금까지도 하고 있습니다. 이 곡은 MV 때 일이 잘 기억나네요. 이 무렵 《카이지》에서 주인공 목소리를 연기하셨던 하기와라 마사토(萩原聖人) 씨가 신경 써 주시게 됐어요. 저희 세대에게 하기와라 씨는 이미 신 같은 존재인데,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MV 출연을 부탁드렸더니 OK 해 주셔서. “진짜냐?!”라며 기뻐하고 있었는데, MV 촬영 당일 사카타 (코지(酒田耕慈), 전 멤버 Dr)가 집합 장소인 에비스 역 앞에서 엄청나게 지각을 해서. (웃음) 하기와라 씨가 기다리는 산속 촬영 장소에 절대 제시간에 도착할 수 없으니까 다들 “장난하냐!”라며 엄청 예민해졌고, 사와토 씨가 서둘러 차를 출발시키려는데 사카타가 짐을 뒤적거리더니 “가죽 조끼를 깜빡했어요!”라고 하는 거예요. (맨살에 가죽 조끼를 의상으로 하고 있었다) 서둘러 에비스 역 근처에서 리사이클 숍을 발견해서 “절대 없을 것 같지만, 일단 저기서 찾아와, 이 바보야!”라며 반쯤 자포자기로 다들 차 안에서 짜증 내며 기다리고 있었죠. 그랬더니 “있었어요~!”라며 금방 돌아와서. (웃음)

하기와라 마사토가 출연한 〈우리들 체인지 더 월드〉의 MV.

하하하하하. (웃음)

“있었어?!” 하고. (웃음) 슈퍼플라이(Superfly) 같은 수술이 달린 가죽 조끼를 사서 바로 돌아온 거예요. 다들 엄청 화나 있었는데 “뭐야, 있었냐”라며 너무 웃겨서 다 같이 웃어버렸죠. 그렇게 산속 촬영 현장에 늦게 도착했는데, 하기와라 씨는 “완전 아무렇지도 않아”라며 전혀 화내지 않으셨어요. 오히려 촬영이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 메일을 주셔서 “오늘 괜찮았어? 좋은 촬영이 됐을까?”라고 말씀해 주셨죠. 하기와라 씨와는 지금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싱글 수록곡들도 라이브에서 자주 하시죠.

그렇죠. 〈생큐 아이 러브 유 세계(サンキューアイラブユー世界)〉는 얼마 전 빌보드 도쿄(ビルボードTOKYO)에서 불렀는데 굉장히 좋았고, 좋은 곡을 썼었구나 싶었어요. 이 곡은 시모키타자와의 ‘교자노오쇼(餃子の王将)’ 앞을 지나갈 때 왠지 갑자기 가사와 멜로디가 세트로 내려왔어요. 당시는 곡을 만들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펑펑 나왔었나 봐요. 쥐어짜내는 일은 전혀 안 했네요. 밴드 시작하기 전까지 28년분의 초기 충동이 있었던 거죠.

지금 다시 생각해도 이 시기는 정말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때였네요

2장의 싱글을 거쳐 마침내 첫 번째 앨범 《잊을 수가 없어》(2012년 3월 7일)가 릴리스됩니다. 데뷔 앨범 곡들에는 특히 에피소드가 많을 것 같아요.

첫 번째 앨범 《잊을 수가 없어》 릴리스 당시의 아티스트 사진.

〈나를 지키고 싶어(俺を守りたい)〉는 텐피트(10-FEET)의 타쿠마(TAKUMA) 씨가 좋아한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아마 당시 타쿠마 씨가 쓰시던 블로그에서 ‘라이브 전 긴장될 때 듣는 곡’으로 와스레란네요의 〈나를 지키고 싶어〉가 왠지 시온(SION) 씨의 곡과 함께 언급되어 있어서. “진짜냐?! 대체 왜!” 같은. (웃음) 감사 인사를 하려고 사무소에 CD를 보냈더니 답장을 주셨고, 그 후 응원 코멘트도 받았죠. 그리고 〈게이오 보이가 되고 싶어 ~드라마틱 러브~(慶応ボーイになりたい 〜ドラマティック・ラブ〜)〉(싱글과는 다른 버전 수록)는 라이브에서 반드시 2분 정도 MC를 했어요. 지금의 〈바보들뿐(ばかばっか)〉에서 맥주를 마시는 대목 같은 느낌으로, 학원제 등에서 무조건 먹히는 게 ‘오갓치를 게이오 보이에게 뺏겼다’는 MC, 아니 만담이었거든요. (웃음) 게이오대학 축제에 스키마 스위치(スキマスイッチ)의 오프닝 게스트로 나갔을 때도 〈게이오 보이가 되고 싶어〉 만담을 해서 아주 잘 먹혔어요. 반쯤 비웃음이었지만. (웃음)

데뷔 앨범을 내 당시에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나요?

특히 당시는 풀 앨범을 낸다는 게 굉장히 중요한 이벤트였기 때문에 야심이 대단했습니다. 아직 아무것도 아니기에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목표는 오리콘 10위 이내를 노려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했었고. 뭐, 전혀 못 갔지만요. (웃음) 그렇기에 MV가 중요했고, 게다가 〈C부터 시작하는 ABC〉로 《카이지》 ED 곡, 〈우리들 체인지 더 월드〉 MV에 하기와라 씨 출연, 그 사이에 〈이 거리에는 네가 없어〉로 잭스 카드 타이업(컴필레이션 앨범 《잭스 프레젠츠 당신의 꿈에 응원가 치어 송 포 유어 드림즈(JACCS presents あなたの夢に応援歌 Cheer song for your dreams)》 참여)이 이어지고 있었기에, 첫 번째 앨범을 내면서 여기서는 제대로 큰 걸 해내야 한다는 생각으로 리드 곡 〈잊을 수가 없어〉 MV에 여배우 니카이도 후미(二階堂ふみ) 양이 출연해 주었습니다.

이 거리에는 네가 없어 - 와스레란네요 【뮤직 비디오】

당시는 아직 무명에 가까웠죠?

아직 유명해지기 전이었는데, MV 감독인 나카무라 카요(中村佳代) 씨가 발견해서 괜찮다 싶어 제안했더니 OK였어요. 이 MV는 방학 중인 초등학교에서 촬영했는데, 거기에 니카이도 후미 양이 학원제에서 라이브를 한다거나 하는 설정으로 스트라토캐스터(Stratocaster)를 메고 나타났죠. 교실이 대기실이었는데 틈틈이 거기서 기타 연습을 하고 있더라고요. “무슨 곡 연습하세요?”라고 물었더니 “도쿄지헨(東京事変) 곡 연습하고 있어요”라고 했어요. 아아, 문화제구나 싶었죠. (웃음) 엄청 귀엽고 얌전한 분이었습니다.

니카이도 후미가 출연한 〈잊을 수가 없어〉의 MV.

〈잊을 수가 없어〉라는 곡은 앨범에서 처음 등장하잖아요? 이건 언제 만들어진 곡인가요? 전부터 있었던 건지, 아니면 앨범을 위해 만든 건지.

완전 초기에도 있었던 것 같아요. 어쩌면 〈C부터 시작하는 ABC〉보다 전에 있었을지도? 고교 시절부터 멜로디는 머릿속에 있었고, 이 밴드를 시작했을 때 처음으로 “잊을 수가 없어, 베이베”라는 가사를 붙였습니다. 그리고 A멜로는 지금의 가사가 아니라 당시에는 밴드 멤버 소개 가사였어요. 자주 제작 CD-R 《드릴 러브(ドリル・ラブ)》에 수록된 버전은 그렇게 되어 있죠. 사카타를 소개하는 부분이 “드럼을 못 쳐~” 같은 심한 가사인데, 제가 마음대로 녹음해서 그걸 굿즈 판매대에서 팔았더니 사카타가 라이브 끝나고 돌아가는 전철 안에서 화를 내더라고요. 그야 당연하죠. (웃음) “진짜 화나니까 가사 좀 바꿔줘”라고 했는데, 저도 오기가 생겨서 “싫어”라며 거절했죠. (웃음) 하지만 이건 확실히 장난칠 곡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사를 다시 썼습니다. 하지만 멤버 소개로 한 번 정착된 가사였기 때문에 좀처럼 써지질 않더라고요.

어떻게 지금의 가사를 쓸 수 있었나요?

당시 안노 히데아키(庵野秀明) 씨가 프로듀스한 히라노 카츠유키(平野勝之) 감독의 《감독실격(監督失格)》이라는 작품을 영화관에서 봤을 때, 훌륭해서 엄청나게 울어버렸는데 코를 풀려고 화장실에 들어갔더니 “햇살이 강해 하지만 뜨겁지 않아” 이후의 가사가 쏟아져 나와서 ‘우와, 써졌다!’ 같은 느낌으로 쓸 수 있었어요.

헤에~!

전 ‘좋은 작품’을 보면 역시 가사를 쓸 수 있게 되는구나 싶더라고요. 요전에도 마타요시 나오키(又吉直樹) 씨와 하타 모토히로(秦基博) 씨의 ‘낭독×음악 라이브’라는 이벤트를 보러 갔는데 그때도 가사가 생겼어요. 그리고 친하게 지내는 밴드 나무아미타불(南無阿部陀仏)의 보컬 마에스로부터 베이스 아베가 탈퇴하니까 라이브에 와 달라는 말을 듣고 보러 갔더니 역시 가사가 나왔어요. 그건 이제 메커니즘으로 있는 거구나 싶어서, 앞으로는 의식적으로 라이브를 보러 가려고 합니다.

와스레란네요에게 〈잊을 수가 없어〉라는 곡이 있고 없고는 완전히 다르겠네요.

테마송이죠. 가사적으로도 언제 불러도 ‘아아, 그렇지’라고 생각하게 되고요. 하지만 이 앨범은 스스로는 못 듣겠어요. 연주나 템포나 너무 미숙해서. 가창도 봐줄 수가 없는 느낌이라.

아니, 하지만 듣는 쪽은 그런 부분까지 포함해서 사랑스럽게 생각하는 작품인데요.

그렇죠, 이런 느낌은 두 번 다시 낼 수 없을 테니까요. 지금 다시 생각해도 이 시기는 정말로 ‘거침없이 나아가는’ 때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