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튜브에서 공개되어, 뮤직비디오의 ‘클리셰’를 표현한 신곡 〈MUSIC VIDEO〉의 MV가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오카자키 타이이쿠(岡崎体育). 그는 자신이 만드는 음악을 ‘분지 테크노(盆地テクノ)’라고 정의하고, 그 전도사로서 2012년부터 간사이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독특한 이름과 강렬한 MV로 일약 각광을 받으며 2016년 음악 씬의 다크호스로 불리고 있는 오카자키. 그는 도대체 어떤 인물인가? 음악 나탈리에서는 그 캐릭터를 해부하기 위해 오카자키 타이이쿠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작곡가의 원점은 《대합주! 밴드 브라더스》
〈MUSIC VIDEO〉의 뮤직비디오 반향이 정말 대단하네요. 공개 한 달 만에 유튜브 재생 수가 200만 회를 넘었습니다.
〈MUSIC VIDEO〉 MV.
오카자키 화면 속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던 아티스트분들이 트위터 등에서 알아봐 주시는 게 정말 놀랍습니다. 반향이 있어서 기쁜 게 우선이지만, 프레셔를 느끼게 됐어요. 다음 결과물을 내놓기가 어렵겠구나 싶어서요. 벌써부터 “다음은 오카자키가 어떻게 나올까” 같은 말들이 트위터 등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하하하하. (웃음) 그만큼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겠죠. 오카자키 타이이쿠 씨는 이번이 음악 나탈리 첫 등장이라 여러 가지 여쭤보고 싶은데, 우선 음악에 눈을 뜨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어머니가 퀸(Queen) 같은 음악을 들으셔서 어릴 때부터 서양 음악을 중심으로 음악과 친숙하게 지냈습니다.
처음으로 산 CD는요?
스피드(SPEED)의 〈my graduation〉입니다. 저희 집은 용돈제가 아니라, 갖고 싶은 게 있으면 어머니께 프레젠테이션해서 설득해야 사주시는 제도였거든요. 그래서 〈my graduation〉은 ‘뮤직 스테이션’ 같은 데서 처음 듣고 후렴구가 멋지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곡의 장점을 어머니께 설명하고 CD를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악기를 배우기도 했나요?
한때 피아노를 배웠어요. 다만 선생님이 대학생이었는데, 취업 활동 때문에 단 3개월 만에 그만두게 되셨지만요. (웃음) 작곡을 시작한 건 중학생 때예요. 닌텐도 DS 게임 소프트 중에 《대합주! 밴드 브라더스(大合奏!バンドブラザーズ)》라는 게 있는데, 그 부록 기능으로 작곡 콘텐츠가 있었거든요. 게임 본편이 아니라 그걸로 작곡만 주구장창 했습니다. 악보를 만드는 법이나 소리를 얹는 법 등의 노하우를 거기서 배워나갔죠.
스태프가 종이 꽃가루를 뿌리는 가운데 직접 셔터를 누르는 오카자키 타이이쿠.
게임으로 작곡을 하셨다고.
네. 실제로 즐겨 들었던 건 유행하는 록이었지만요. 하지만 당시에는 밴드를 결성하겠다는 생각까지는 못 했고, 계속 혼자서 게임으로 작곡을 했습니다.
당시 만들던 곡은 어떤 스타일이었나요?
당시 듣던 제이팝이나 록을 참고해서 팝적인 곡을 만들었죠. 지금의 음악성과 크게 동떨어져 있지는 않다고 생각해요.
이시노 탓큐 씨를 넘어서겠다!
공식 사이트의 바이오그래피를 보니, 고등학교 때 한 번 기타에 좌절했다가 대학교에 들어가서 밴드를 결성하셨더군요. 입학 직후에 ‘아이신카쿠라 누르하치(愛新覚羅ヌルハチ)’라는 밴드를 결성하셨는데, 어떤 음악을 하셨나요?
전자음악과 밴드 사운드를 융합시킨 것이었어요. 하지만 결성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멤버들이 미국으로 가거나 취업 활동을 하느라 빠져나가서 결국 저와 드럼 친구만 남게 됐죠. 그 후에 그 친구와 펑크 유닛 ‘바츠야야나 카마수트라(ヴァーツヤーヤナ・カーマ・スートラ)’를 결성했는데, 연주 실력이 엉망진창이었어요. (웃음) 게다가 보유 곡도 거의 없었죠. 그게 오히려 잘 됐다고 해야 할지, 30분 공연 시간을 채우기 위해 연극을 하게 됐거든요. 하지만 대사를 외울 시간이 없어서 대사를 녹음해 두고 립싱크로 퍼포먼스하는 오페레타(Operetta) 형식을 취했습니다. 제 라이브가 대체로 립싱크인데, 그 모태가 된 것이 바츠야야나 카마수트라에서의 퍼포먼스입니다.
다만 그 유닛도 오래가지 못했고, 대학 졸업 후에 오카자키 타이이쿠로서 활동을 시작하셨습니다.
네. 유닛이 해산된 뒤 혼자서 음악을 계속할 생각은 없어서, 취업 활동을 하고 한 번 회사 생활을 했어요. 하지만 역시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에 반년 만에 퇴사했죠. 그 후에 오카자키 타이이쿠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왜 다시 밴드를 하는 게 아니라 테크노를 하려고 하셨나요?
제가 가장 동경하는 아티스트가 덴키 그루브(電気グルーヴ)입니다. 사운드도 물론 좋아하지만, 라이브 영상 같은 걸 보고 ‘이렇게 장난을 쳐도 멋있을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어요. 테크노와 장난스러운 퍼포먼스는 상성이 좋다는 걸 덴키 그루브를 통해 알게 됐죠. 이런 걸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결과, 지금 같은 스타일이 만들어졌습니다.
오카자키 타이이쿠라는 이름의 유래도 이시노 탓큐(石野卓球) 씨라고요.
‘이시노 탓큐 씨를 넘어서겠다’는 의미로 지었습니다. ‘탁구(卓球, 탓큐)’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그것을 포괄해야 한다, 그렇다면 체육(体育, 타이이쿠)밖에 없다! 라고. (웃음) 오카자키라는 것도 본명이 아니라 어머니가 MC 일을 하셨을 때의 예명 성씨입니다. 처음에는 ‘오카 타이이쿠(岡体育)’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려고 했는데, 한자 한 글자인 게 어감이 별로더라고요. 그래서 어머니의 예명을 제가 물려받기로 했습니다.
베이스를 사러 갔다가 9만 9000엔짜리 DTM 소프트를 구입
DTM 소프트로 작곡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바이오그래피에는 2008년에 “DTM 소프트 ‘큐베이스 5(Cubase 5)’ 구입, 본격적으로 작곡을 시작”이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대학 시절 밴드를 처음 결성했을 때, 다들 초보라 각자 연주할 수 있을 법한 악기를 골랐더니 베이스만 남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베이스를 맡게 됐어요. 그런데 베이스가 없어서 와타나베 악기점(ワタナベ楽器店)에 갔는데, 그 악기점이 본점과 디지털&드럼관으로 나뉘어 있었어요. 실수로 디지털&드럼관에 들어갔죠. 그랬더니 점원분이 DTM 소프트를 끈질기게 권하셔서… “저, 베이스 사러 왔는데요”라고 했더니, “이 안에 베이스 소리 다 들어 있어! 이제부터는 DTM 시대야”라며 9만 9000엔짜리 소프트를 사게 됐습니다. (웃음) 그래서 기왕 샀으니 써보자고 이야기가 됐죠.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순순히 베이스를 샀더라면 평범한 밴드를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뭐, 나중에 베이스를 지인에게 양도받아서 베이스도 연주하긴 했습니다만.
예정과 다른 건물에 들어간 것이 운명을 바꿨군요.
어떤 의미로는 그렇죠.
당시의 화풍은 어땠나요?
메시지 송은 전혀 없었고, 제가 좋아하는 단어들을 나열해서 소리 지르기만 하는 곡이 많았어요. 지금의 가사 분위기와 비슷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밴드였으니 소리는 전혀 달랐지만, “멜로디가 캐치하네”라거나 “후렴구를 외우기 쉽네”라는 소리는 들었습니다. 캐치한 멜로디 만들기는 그때부터 의식하고 있었어요.
애초에 음악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고 생각한 건 언제쯤이었나요?
그걸 제가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오카자키 타이이쿠로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 초등학교 졸업 앨범을 펼쳐보니 ‘작곡가가 되어 내 음악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다’라고 써 놓았더라고요. 심지어 악기도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예요.
그거 흥미롭네요.
그래서 그걸 쓴 이유를 떠올려 봤는데, 초등학교 6학년 때 리코더로 자신이 직접 만든 곡을 한 곡 선보이는 숙제가 있었는데, 만든 곡을 칭찬받았거든요.
그때부터 작곡가로서의 편린이…
그런데 나중에 선생님이 “이거 어디서 베낀 거지?”라고 하시더라고요.
왜 그러셨나요?
제 다음 순서였던 여자애가 “저는 도저히 곡을 못 만들겠어서 애니메이션 오프닝 곡을 불게요”라고 하고 불었거든요. 그걸 들은 선생님이 방과 후에 저를 불러내서 “그 애는 정직하게 못 불겠다고 말했는데, 왜 너는 직접 만들었다고 거짓말하고 남의 곡을 하니?”라고 의심하셨어요.
초등학생이 만들기에는 퀄리티가 너무 높았던 거군요.
그랬을까요. (웃음) 그래서 그 선생님한테 본때를 보여줘야겠다 싶어서 졸업 문집에 ‘작곡가가 되겠다’라고 썼습니다. 당시엔 악기도 제대로 못 다룰 때였는데. (웃음)
“4년 해서 메이저 데뷔 못 하면 포기해라”
오카자키 타이이쿠로서 활동을 시작했을 때, 어떤 아티스트를 목표로 삼았나요?
절대로 묻히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쟁쟁한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돌출된 존재가 되지 않으면 하는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었죠. 그런 생각이 있었기에 우선 눈에 띄는 일을 해서 업계 사람들에게 체크받아야겠다고 생각해서 ‘네타(ネタ, 개그 요소)’로 나갔어요. 사람들이 처음 보고 반응하기 쉬운 웃음에 비중을 두고 활동하기 시작했는데, 그게 좋은 방향으로 풀린 것 같습니다.
메이저 데뷔의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소니 그룹의 신인 발굴 스태프 눈에 띄어 육성 계약을 맺게 된 것이 계기입니다. 그게 2014년 연말쯤이었나? 무조건 메이저 데뷔를 할 생각이었고, 못 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자신감이 있었나요?
…라는 건 농담이고, 제의가 왔을 때는 정말 기뻤습니다.
메이저 데뷔를 앞두고 주변 반응은 어떤가요?
가족들이 기뻐해요. 제가 나오는 라디오를 녹음하거나 TV를 녹화하기도 하고요. 그리고 제가 슈퍼마켓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데, 파트타임 아주머니들도 유튜브 같은 걸 봐 주시고, 주변의 따뜻한 응원에 힘을 얻고 있습니다. 오카자키 타이이쿠로서 활동을 시작한 게 23살 때였는데, 제가 외동이라 부모님은 안정적인 직업을 갖길 원하셨거든요. 하지만 어떻게든 설득해서 음악의 길로 가게 됐을 때 “4년 해서 메이저 데뷔 못 하면 포기해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인디 시절에는 라이브에서 “27살 여름까지 메이저 데뷔하겠습니다”라고 계속 말해왔어요. 그걸 제대로 이뤄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슈퍼마켓 아르바이트 경력이 꽤 길죠?
네. 지금도 열심히 시프트에 들어가고 있어요. 많을 때는 주 5일 들어갔는데, 지금은 음악 활동으로 바빠서 주 3일로 조정해 주셨고요. 아르바이트를 시작할 무렵에 “음악을 하고 있고, 메이저 데뷔를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드렸더니 이해해 주시더라고요. 여러모로 협조해 주시고 계셔서 감사한 마음도 있고, 가능한 한 오랫동안 아르바이트를 계속하려고 합니다. 메이저 데뷔 아티스트가 슈퍼에서 알바를 한다는 것도 캐치한 요소라고 생각하고요.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음악 활동에 영향을 주는 부분도 있나요?
일터에서 보고 들은 것을 소재로 곡을 쓰지는 않지만, 2010년대에 아티스트에게 SNS 퍼포먼스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트위터에 아르바이트 중에 있었던 재밌는 일을 적음으로써 “오카자키 타이이쿠 재밌네”라고 흥미를 가져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아르바이트 중에도 손님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소재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지금 시대는 음악만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
이번 메이저 데뷔 음반은 인디 시절의 곡들과 신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What’s 오카자키 타이이쿠’라고 할까, 뻔하지만 명함 같은 앨범을 의식해서 만들었습니다. 어쨌든 세상에 널리 알려지는 것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니까 라이브에서 관객 반응이 컸던 곡들을 넣었고요. 그리고 제 음악은 소리만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서, 초회 한정반은 MV를 넣은 DVD를 세트로 구성했습니다.
소리만으로는 다 표현할 수 없다는 건, 자신의 음악은 영상이나 퍼포먼스가 있어야 완성된다는 의식인가요?
네. 그건 강하게 생각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지금 시대는 음악만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오카자키 타이이쿠의 음악을 모르는 층이 제 CD를 계산대까지 가져가게 하는 건 어려운 일이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우선은 재미있는 영상으로 주목받는 것부터 시작하려고 합니다.
확실히 오카자키 씨의 곡은 영상이 잘 떠오르는 곡이 많네요. 가사가 먼저인가요?
두 가지 타입이 있는데, 진지하게 만든 곡, 예를 들어 이번 앨범 중에는 〈스페츠나츠(スペツナズ)〉나 〈에클레어(エクレア)〉 같은 경우 가사는 곡이 완성될 때까지 떠오르지 않아요. 반대로 라이브에서 자주 하는 이른바 ‘네타 곡’은 만드는 시점에서 테마가 있고 MV 영상까지 떠올라 있죠. 그중에서도 지금까지 후배 영상 작가 스시 군이 찍어준 곡의 MV는 가사가 대본처럼 되어 있어요. 그래서 스시 군은 “편하다”라고 하더라고요. (웃음)
전곡은 아니더라도 기본적으로 MV를 만드는 것까지 고려하면, 한 곡을 완성하는 데 돈과 시간이 꽤 들겠네요.
꽤 들죠… 하지만 〈스페츠나츠〉나 〈에클레어〉처럼 진지하게 만든 자신작들도 세상 사람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는 우선 오카자키 타이이쿠라는 존재를 널리 알려야 해요. 그걸 생각했을 때 영상이 가장 접근하기 쉽거든요. 양면성 있는 음악성을 알리기 위해서라도 MV는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카자키 타이이쿠는 장난만 치는 게 아니라 음악도 진지하게 하고 있다는 걸 이해받는 것이 저에게는 행복입니다.
〈스페츠나츠〉 MV.
네타 곡이 유독 주목받기 쉽지만, 오카자키 씨는 곡 제공도 하고 계시죠. NHK에서 방송된 애니메이션 〈추억의 파편(想いのかけら)〉의 배경음악은 아름다운 멜로디가 인상적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곡 제공도 하고 리믹스도 하고요, 무대 위에 서는 것뿐만 아니라 무대 뒤의 일도 좋아합니다. 그런 면에서 작곡가가 되고 싶다던 초등학교 졸업 문집의 꿈을 구현하고 있어서 정말 행복합니다.
〈에클레어〉에서 “좋은 곡은 좋은 사람과 함께”라는 구절이 있는데, 오카자키 씨에게 ‘좋은 곡’의 정의란 무엇인가요?
거짓 없는 말과 마음으로 쓰인 곡입니다. 긍정적인 메시지 송도 좋지만, 못난 놈이 못난 짓을 노래하는, 있는 그대로의 한심한 자신을 드러내는 곡을 좋아해요. 그런 의미에서 제가 라이브에서 하는 네타 곡 〈FRIENDS〉나 〈가족 구성(家族構成)〉도 좋은 곡입니다. 네타 곡으로 성공하고 싶다! 라는 제 의식이 거짓 없이 담긴 곡이니까요.
〈FRIENDS〉는 곡 전개도 정말 대단하더라고요.
엉망진창이니까요. (웃음) 가사도 밴드 활동의 클리셰들을 적나라하게 쓰고 있고요. 그것도 저에게는 거짓 없는 부분이라서요.
〈FRIENDS〉 MV.
〈가족 구성〉 MV.
분지 테크노란?
자신의 음악 장르를 ‘분지 테크노’라고 정의하셨는데, 이건 언제부터였나요?
오카자키 타이이쿠로서 처음 했던 라이브 때부터예요. 깊은 의미가 있는 건 아니고요. ‘분지(盆地)’라는 단어의 캐치함과 ‘테크노’라는 단어의 어감이 좋다고 생각해서요. 그리고 테크노라고는 하지만 그렇게 정통 테크노도 아니고 해서…
그렇군요. (웃음)
미니멀 테크노처럼 정통파가 아니라 제이팝이나 테크노 팝에 가까운 음악성이고요. 다만 테크노 음악을 정말 좋아하고 테크노라는 단어도 멋있고… 하지만 이걸 테크노라고 하면 혼날 것 같아서 ‘분지 테크노’라고 이름 붙여 얼버무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오카자키 타이이쿠 씨의 음악으로 벌써 스며들고 있죠. 그런 분지 테크노를 말로 표현한다면요?
라이브에서 하는 곡들에 관해서는 메타적인 표현입니다. 앨범 곡 중에서는 곡 안에서 곡 설명을 한다거나(〈Explain〉), 뮤직비디오 곡에서 뮤직비디오의 클리셰를 노래한다거나(〈MUSIC VIDEO〉), 2절 가사를 통째로 잊어버린 것을 노래로 만든다거나(〈Voice Of Heart〉). 제삼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악곡들이 오카자키 타이이쿠의 음악 = 분지 테크노라고 생각합니다.
오카자키 씨는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립싱크 단독 라이브를 하는 것을 목표로 내걸고 계신데, 왜 일본 부도칸이나 도쿄돔이 아니라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인가요?
대학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할 때 친구 권유로 우타이테(歌い手)분들이 많이 출연하는 이벤트에 갔다가 압도당했거든요. 중고생들이 우타이테들에게 열광하는 모습이 정말 대단했어요. 그래서 저도 똑같은 무대에 서서 그들과 같은 감각을 맛보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이후로 계속 목표로 말해오고 있어요. 사실 처음에는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는 무리일 것 같아서 “SSA에서 단독 라이브를 하겠다”라고 얼버무렸지만요.
SSA에 다른 의미가 있나요?
억지스럽지만 사노 휴게소(佐野サービスエリア, 사노 서비스 에어리어)도 SSA니까요. (웃음) 하지만 메이저 데뷔를 한 이상은 당당하게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라이브를 하겠습니다”라고 말하려고 합니다.
그 외에 실현하고 싶은 목표가 있나요?
메이저 무대에서 길고 굵게 활동하는 것. 다른 아티스트에게는 없는 독특한 공기감을 만드는 것입니다. 웃음뿐만 아니라 오카자키 타이이쿠의 음악을 듣거나 라이브를 보며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활동을 해나가고 싶습니다.